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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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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내 몫의 십자가 지는 것이 축복의 지름길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순복음 신앙의 기초이자 뿌리는 바로 ‘십자가’ 신앙이다. 십자가는 로마시대의 ‘사형틀’이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새싹이 나는 것처럼 부활의 새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역사가 토인비가 말하기를 “기독교는 모든 종교 위의 종교다. 한 알의 밀알의 진리를 가진 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는 모두 ‘자신의 몫에 태인 십자가’가 있다는 의미이다. 십자가는 육에 속한 자아가 죽고 신령한 나로 변화를 받는 곳이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서 부패한 자아를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 믿은 후에는 이 부패한 자아를 처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육체는 수양과 도덕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육체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는 모든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가오는 체험이다.
그러므로 나의 십자가를 남의 탓으로 원망하지 말아야 된다. 십자가는 ‘내 몫에 태인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남 때문에 내게 그런 십자가가 오는 것이 아니다. 내게 그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십자가를 보내신 것이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가 있다. 자기의 자아가 강한 사람은 그 몫에 태인 십자가가 더 고통스러운 것이고 자아가 약한 사람은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가 가벼울 것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는 “그대가 어디로 가든지 십자가를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가는 곳에는 항상 그대의 자아가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면 오히려 십자가가 그대를 지고 원하는 목표까지 그대를 인도하리니 만약 그대가 십자가를 벗어버리면 틀림없이 또 다른 십자가가 닥칠 터인데 그 십자가는 어쩌면 더 무거울지도 모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 십자가를 피하면 편할 것 같지만 그 다음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가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가 담대하게 그 십자가를 나의 운명으로 알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십자가에 매달리면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의 어느 지방에 소년이 철도변을 지나 학교를 가는데 간밤에 내린 폭우로 철도가 끊긴 것을 발견했다. 시간을 보니 기차가 지나갈 때였다. 소년은 기차를 멈추지 않으면 수백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다급하여 입고 있던 하얀 셔츠를 벗었다. 그리고 가방에 있던 필통에서 칼을 꺼내어 자신의 넓적다리 동맥을 잘라 셔츠를 피로 물들였다. 그것을 깃발처럼 흔들며 기차가 달려오는 쪽으로 뛰어가며 “스톱!”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외쳤다. 결국 소년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달려오는 것을 본 기관사는 기차를 세우기 시작했고 겨우 소년 앞에서 멈췄다. 기관사가 내려 보니 철로가 끊어져 있었다. 그러나 동맥을 끊어 피를 너무나 많이 흘린 소년은 그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기차가 갑자기 정지하자 놀라서 뛰어내린 승객들은 그 소년을 끌어안고 “이 소년의 피값으로 우리가 살았다”고 외치며 모두 통곡했다고 한다. 승객들은 그 자리에서 모금을 하여 소년의 동상을 세웠다. 소년의 책가방 속에는 신약성경이 들어 있었으며, 그는 주일학교 때부터 들었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생명이 산다”는 진리를 그의 삶 속에 실천해 보인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를 지고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처럼, 나도 내 십자가를 지고 죽겠다는 믿음과 실천! 그것이 바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의 순복음이다.
김에녹 목사 henoch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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