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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드리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관리자
 
     
  데메드리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몇 년 전 검찰에서 일수 벌금제를 시행한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수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일 것이다. 과거에 일수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필자가 갖는 이 단어의 의미 또한 매우 부정적이다. 필자가 교회를 섬길 때, 새벽 예배를 위해 교회 문을 열 때마다 문 앞에 일수라고 적힌 명함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누가 가져다 놓는지 궁금하던 차에 오토바이를 타고 험상 궂은 얼굴로 명함을 뿌리던 나쁜 사람들을 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자의 부정적인 의미와는 달리 이 단어는 긍정적일 수도 있다. 목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번에 목돈을 제공하고, 장사를 하면서 그날그날 조금씩 갚아나가는 것은 매우 유용한 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수 벌금제 또한 부정적인 의미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서 시행하려는 제도인 것으로 보인다. 일수 벌금제란 개인의 소득과 재산에 따라 벌금 액수를 다르게 매기는 방식으로 범죄의 경중에 따라 일수를 정하고 피고인의 재산 정도에 따라 일정액을 정한 다음 일수에 일정액을 곱하여 벌금액을 산정하는 방식, 즉 벌금을 낼 수 없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이 저지른 식품 위생법, 도로법, 건축법 위반에 대해 일정액의 벌금을 면제하고, 부과된 벌금 또한 일정 기간 연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아마도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짓는 죄에 대한 동정의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먹고사는 것은 중차대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창세기 요셉의 이야기는 사람이 먹을 것이 없을 때에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일도 행한다는 사실을 전달해 준다. 배가 고프면 판단력이 흐려질 뿐만 아니라, 도덕의식이나 죄의식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는 어느 한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어느 정도 동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태도가 얼마나 복음 전파에 위협이 되는 지에 대해 가르쳐 준다.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에서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팔아 그의 직공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울 일행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에 이들은 복음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소요를 일으켜 바울을 대적한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거부한 이유이다. 그들은 복음의 내용을 듣고 그 내용의 진위 여부에 따라 판단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자신들의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따라 판단한 것이다. 당시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신을 섬기고 있었다. 데메드리오는 여기서 필요한 은감실을 만들어 아데미 신전에 납품함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다. 만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에베소 사람들이 받아들이면, 아데미 신을 섬기는 일은 우상숭배가 되어 부끄러운 일이 되고, 그렇다면 자신들의 생계를 위한 일이 부끄러워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없어져 자신들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행 19:27 참조). 결국 데메드리오는 자신과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의 기회를 오히려 하나님과 바울에게 죄를 짓게 되는 불행한 사람이 됐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중대한 문제보다 나의 작은 문제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이 중한 병에 걸린 것보다, 지금 나에게 고통을 주는 손의 작은 상처가 더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아무리 중차대한 문제로 보일지라도, 복음의 진리 앞에 비추어 올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무리 중차대하지만, 그 문제로 인해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30)

이영호 교수(한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