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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하나님의 관점으로 꿈꾸고 바라보는 신앙
  관리자
 
     
  ③하나님의 관점으로 꿈꾸고 바라보는 신앙 
믿음의 눈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자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라는 친남매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살던 베다니에 예수님이 도착하시기 전에 나사로가 병들어 죽고 말았다. 누이동생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라고 한탄하며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사로는 이미 숨이 멈췄고, 이미 수족이 베로 묶였고, 이미 무덤에 뉘였고, 이미 돌문에 막혀 세상과 차단된 상태로 나흘이나 지나 벌써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요 11:23)고 선언하셨다. 마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 사람들이 통곡을 하는 그 순간 그들을 향해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막 5:39)고 말씀하시고 아이의 손을 붙들어 일으켜 살리셨던 모습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했다. 그리고 남은 누이동생 마리아를 불러 나사로의 무덤으로 향하셨고 돌문을 치우라고 명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부르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이고 얼굴이 수건에 싸인 채로 무덤에서 살아나왔다. 예수님의 관점은 ‘죽음’까지도 극복하는 ‘기적’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감각적인 인지능력과 현실적인 판단에 묶여있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기적을 꿈꾸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관점’을 지니는 것이 바로 ‘바라봄의 법칙’이다. 또한 ‘바라봄의 법칙’을 날마다 입술로 시인하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는 말씀을 삶에 직접 적용하고 그러한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신앙, 그것이 바로 순복음 신앙이다. 긍정의 삶을 역설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자신의 책 「최고의 삶」에서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가? 상관하지 마라. 성경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반드시 봐야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믿어야 볼 수 있다”고 역설한다. 눈으로 봄으로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눈이 아니다 오히려 믿어야 보인다. 믿음의 눈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막힌 담을 헐어 버린다. 믿음은 현재의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고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행해야할 진정한 신앙의 도전이요 믿음의 모험이다.

 하버드대학교 총장이었던 나단 푸시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마음껏 흔들고 싶은 깃발이 없고, 목 놓아 불러야할 노래도 없고, 모든 것을 걸고 따를 수 있는 신조도 없고, 진정으로 따를 수 있는 지도자마저 사라져 버린 시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이 시대의 불행은 ‘바라보고 꿈꾸며 따라야 할 대상’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해매고 있는 이들의 좌절과 고통 그리고 분노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젊은이들 뿐 이겠는가?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바로 내 부모가,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자녀들이, 내 형제들이, 내 이웃들이 그렇게 불행하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바라보고 꿈꾸고 따라야 할 대상이 없는 세상에서 실패와 절망이라는 불뱀에 물린 사람들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단단히 일으켜 세우고 “예수 안에 희망이 있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절망과 고통을 치료받고, 새 희망을 꿈꾸며 믿음으로 바라보고, 입술로 시인하라”고 외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순복음 신앙의 핵심이요 뿌리인 ‘바라봄의 법칙’을 실천하고 전파하여 축복의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이다.

 

김에녹 목사 henoch9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