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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제자들의 부족한 모습
  관리자
 
     
  12제자들의 부족한 모습 
 4복음서, 그 중에서도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12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을 안타까우리만큼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다 보면 제자들의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이 드러나리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이들의 모습은 이 같은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실망스럽다는데 문제가 있다. 왜 그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주님 곁에서 주옥같은 말씀과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직접 듣고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늘 부족한 모습만 보였을까? 우리는 먼저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본 후, 성경에 그들이 그렇게 묘사된 이유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1. 복음서에 기록된 12제자들의 부족한 모습


 4복음서가 기록될 즈음이면 예수님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초대교회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복음서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는 것은 이러한 묘사 속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복음서에 기록된 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에 대한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① 세 차례에 걸친 선상(船上) 장면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호수)를 건너가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때마다 제자들은 두려워 떨거나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아서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후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하고 말씀하셨다(막 4:40). 밤 4경(새벽 3∼6시경)에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위험에 빠졌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구하시려고 바다 위로 걸어오시자 제자들은 유령으로 생각하여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휩싸인다(막 6:45∼52).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4000명을 먹이신 후 배를 타고 가시면서 제자들을 연속적으로 책망하신 것이 압권이다.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8:17∼18, 21). 

 성서학자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배’가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데(에른스트 베스트, 프랭크 메이테라 등), 세 차례에 걸친 선상 장면에서 제자들이 이처럼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면 제자들은 아직 교회를 이끌어갈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도로 우뚝 설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요 2:22, 행 4:13, 14 참조).


 ② 예수님의 세 번에 걸친 수난 예언 직후의 제자들의 반응

 4복음서는 복음서 간의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전반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후반부는 주님과 고난과 십자가를 서술한다. 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정점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자리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님의 능력 있는 사역의 결과로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되자 주님께서는 비로소 자신이 당하실 고난과 십자가를 예고하신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이 같은 수난 예고가 세 차례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은 그때마다 이상하리만큼 엉뚱한 반응을 보인다. 첫 번째 예고 때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한다(막 8:32). 여기에 사용된 ‘항변하다’는 동사의 원어 ‘에피티마오’는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실 때 사용하시는 ‘꾸짖다’와 같은 단어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십자가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을 꾸짖은 것이 된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시며”(‘에피티마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신다. 두 번째 수난예고 때는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했다(막 9:32). 그리고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며 싸움을 벌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세 번째 예고 때는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즘 말로 ‘청탁’을 하고, 나머지 제자들은 이 두 형제에게 화를 냈다(막 10:35∼41). 요컨대 주님께서는 고난과 십자가에 집중하시는데 제자들은 주님을 이용해서 이 세상 부귀와 권력을 차지하는 데만 정신이 쏠려있었다. 

 ③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는 예수님과 12제자들의 관계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것은 이 같은 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된다는데 있다. 성서학자인 떼오도르 위든은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가 3단계에 걸쳐 나빠지는 것을 발견했다. 

 첫 단계는 ‘무지’의 단계이다(막 1:16∼8:26). 주님께서 능력 있는 말씀과 기적을 행하시는 현장을 함께 한 제자들이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두 번째 단계는 ‘오해’의 단계이다(막 8:27∼1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알아채기는 했지만 정치적인 메시아/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실 분으로 오해했다. 세 번째 단계는 ‘배반’의 단계이다(막 14:10∼16장). 12제자 중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배반했고(마 26:14∼16),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으며(막 14:66∼72), 나머지 열 제자들도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다(막 14:50).  


 2. 성경은 왜 12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12제자들의 모습은 많은 신학자들의 연구과제가 되어왔다. 복음서는 왜 제자들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여러 가지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① 가장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으로 역사상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복음서에 기록함으로써 이 같은 결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②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사건 이전에는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 이를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부활과 성령체험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의 본질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렌즈의 역할을 한다.
 ③ 목회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초대교회의 기둥이 된 사도들도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기 전에는 늘 부족하고 환난과 핍박이 닥칠 때 배반, 부인, 도망했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능력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크게 쓰셨다는 메시지는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초대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장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역할을 한다. 
 ④ 우리에게 반면 선생의 역할을 한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김호성 목사(국제신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