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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제자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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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제자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 


돌아와 주님의 증인이 된 제자들


 지난 졸고(拙稿), ‘12제자의 부족한 모습’(본지 4월 15일자 게재)을 쓰면서 마음의 불편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물론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은 4복음서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성서학자들이 심지어 “복음서의 반제자적 경향”이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명백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이러한 측면을 피할 수는 없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는 하나 2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신앙의 영웅들의 굴욕적인 모습을 또 다시 어떤 형태로든 문자화하는 작업은 마치 조상의 숨겨졌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결코 유쾌할 리 없는 고통스런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의 실망스런 모습 틈틈이 내보이는 일말의 가능성을 성경 본문에서 발굴해내어 이를 통해 부족하나마 제자들의 일종의 ‘명예 회복’ 내지 균형감각 제고의 기회를 삼고자 한다.  


 1. 제자들을 직접 부르시고 능력을 주신 예수님


 신약성경, 특히 4복음서를 주의 깊게 읽으면 12제자들의 모습이 전적으로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① 예수님께서는 첫 제자들을 직접 불러서 택하셨다. 4명의 어부들, 즉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제자가 되겠다고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의 삶의 현장에 가셔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부르셨다(막 1:16∼20). 세리 마태(마 9:9)와 빌립(요 1:43∼44)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서 뭔가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에 이처럼 제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 또한 주님의 이러한 부르심에 즉각 순종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막 10:28).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막 3:14∼15). 
 ②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셔서 파송하셨을 때 그들도 말씀을 전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놀라운 역사를 행할 수 있었다(막 6:7∼13, 눅 9:1∼6). 주님께서 행하신 사역을 ‘문제투성이’ 제자들도 해냈던 것이다(요 14:12).  
 ③ 제자들이 율법이나 장로들의 전통을 범한 것을 바리새인들이 비난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논박하심으로써 결과적으로 제자들을 두둔하셨다. 예를 들어 침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비난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고 응수하심으로써 제자들을 예수님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손님들로 비유하셨다. 또한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공격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잠잠하게 하셨다(막 2:18∼28). 


 2. 제자들을 직접 가르치신 예수님


 12제자들은 부족하긴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씩 가르치셨다.
 ① 주님께서 장차 당하실 고난을 세 차례에 걸쳐 예고하실 때마다 제자들이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막 8:31∼32, 9:31∼34, 10:33∼41)이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구성하는 주요 증거 중 하나라는 사실은 지난 졸고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제자들의 이러한 실망스러운 모습 직후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길’에 관한 주옥같은 교훈이 나온다는 사실이다(막 8:33∼38, 9:35∼50, 10:42∼45).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와 같은 말씀이 다 이 부분에 속한다. 그러므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참 제자가 가야할 길’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 이외에도 예수님께서는 수시로 12제자들만을 대상으로 직접 가르치셨다. 예를 들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 4:10∼20, 34)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에 대한 말씀(막 7:17∼23)의 의미를 그들에게만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 전체는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택하시고 능력과 권위를 주셔서 파송하시면서 주신 선교명령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종말과 심판에 관한 교훈을 자세히 주셨다(마 24∼25장, 막 13장, 눅 21장).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3. 제자들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부분


 12제자들에 대해서 가장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마가복음에도 “제자들에 대해서 가장 긍정적인 단락”이라고 성서학자들이 꼽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장차 받을 핍박에 관해 예언하신 내용이다(막 13:9∼13).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것처럼 고난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막 13:9).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부족한 제자들도 갈 것을 주님께서 예언하셨으니 이보다 더 긍정적인 제자들의 모습을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4. 잠시 쓰러졌지만 즉시 되돌아온 제자들


 12제자들의 가장 치명적인 잘못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주님을 배반하거나(가룟 유다), 부인하거나(베드로), 또는 도망했다(나머지 열 제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와 좌절의 현장에 그대로 주저앉아있지 않고 눈물로 회개하며 주님께로 돌아왔다.
 ①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주님께서는 ‘새 언약’의 의미를 가진 성찬식을 제정하셨다(막 14:17∼25).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릴 것을 예고하셨다(막 14:27∼28).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또한 내다보셨기에 그들과 이처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②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것처럼(막 14:27)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렸지만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내 통회자복하며 되돌아왔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만나주심으로써 그들을 회복시켜주시고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명하시고(눅 24:4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주셨다(마 28:18∼20). 그들이 성령 충만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행 1:8).
 지금까지 우리는 12제자들이 늘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제자가 되었고, 능력을 주셨을 때 사역을 잘 감당해냈으며, 주님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버리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더라도 이내 회개하고 주님 품에 돌아와 주님의 “자취를 따라”(벧전 2:21) 환난과 핍박을 무릅쓰고 복음의 증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김호성 목사(국제신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