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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유다 왕국 시대의 역사지리
  관리자
 
     
  앗수르 침략 막아낸 히스기야·이사야 믿음의 기도
바벨론의 공격으로 남유다 멸망


 남북왕국이 2백여 년 공존하다가 북왕국은 앗수르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키자마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죽고 사르곤 2세가 등극해 주민 2만7290명을 포로로 붙잡아가서 오늘날 이라크 북쪽 지역에 위치한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수가, 메대의 고을들에 흩어 생활하게 했다.

 홀로 남은 유다왕국은 멸망당하지는 않았지만 앗수르의 압박으로 많은 고통을 받게 됐다. 사르곤 2세는 주전 720년경에 해변 길의 도시들인 하맛을 거쳐 가사, 라비아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집트를 격퇴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지배권을 공고히 했다. 또한 그는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는 사람들을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정착시킴으로써 혼혈민족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나타나게 됐다.(왕하 17:24)

 앗수르 사르곤 왕이 죽고 등장한 산헤립 왕은 다시 유다왕국을 공격했다. 결국 라기스를 비롯한 46개 성읍이 파괴됐고, 예루살렘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겨우 남게 됐다(사 1:7∼8). 그러나 교만한 앗수르를 하나님이 그대로 두지 않고 히스기야 왕의 믿음과 이사야 선지자의 담대한 기도와 선언을 통해 기적을 행하셨다. 야훼의 사자가 산헤립 군대를 쳐서 하룻밤에 18만5000명의 군대가 멸망당한 것이다(왕하 19:35). 앗수르는 그 후에도 계속 세력을 확장하면서 끝까지 교만하고 포악한 태도를 버리지 않다가 결국 메대와 바벨론 연합군에게 멸망당했다. 이처럼 약소국인 유다가 강대국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 멸망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히스기야와 이사야 같이 믿음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의 무너진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왕국도 므낫세 왕이 극도의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입어 멸망하게 됐다. 비록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이 훌륭한 왕으로 전무후무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했으나 하나님의 심판을 되돌릴 수 있을 만한 모든 백성의 회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의인 요시야를 국가 멸망 전에 데려감으로써 멸망의 비극을 겪지 않게 하셨다. 요시야는 앗수르가 멸망한 후 새로운 맹주로 자리잡으려는 애굽 왕 느고를 저지하기 위해 므깃도로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전사하고 만 것이다(대하 35:20∼25). 애굽 왕 느고는 계속 북쪽으로 진군하다가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에게 패배함으로써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애굽은 유다에 대해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해 왕을 바꾸고 애굽으로 끌고가기도 했다. 하지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왕이 되자 상황이 바뀌어 유다는 바벨론의 세력으로 들어가게 됐다.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침공해 주전 597년 3월 16일 여호야긴을 사로잡아가고, 여호야긴의 숙부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다.

 시드기야는 우유부단한 정책으로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바벨론의 공격을 받게 됐다. 바벨론 군대는 주전 587년 7월 예루살렘을 함락시킴으로 유다는 멸망했다. 시드기야는 여리고로 내려가는 아라바 길로 도망가다가 사로잡혀 립나에서 형벌을 당하고 놋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바벨론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간 유다 사람들은 애굽의 믹돌과 다바네스, 놉, 바드로스 등지에 흩어져 살았으며, 후에는 나일강 중류의 작은 섬인 엘레판틴에서 살면서 당시 종교생활에 대한 문서를 남기기도 했다.
(목회·교육담당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