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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귀환 시대의 역사지리
  관리자
 
     
  ⑪ 포로귀환 시대의 역사지리 
스룹바벨 시대 예루살렘성전 재건 시작
에스라·느헤미야 통솔아래 재건 성공적 마쳐 
이스라엘 백성 ‘부림절’ 기억하며 주께 감사



 바벨론의 멸망은 마지막 황제 나보니두스의 실정과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의 아들 벨사살의 교만함으로 가속화됐다. 주전 539년 바벨론 장군 고브리아스가 고레스에게 투항함으로써 바사제국은 피를 흘리지 않고 바벨론을 점령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 주전 538년에 유대인 공동체 및 제의의 재건에 대한 칙령이 발표됐다. 이로써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 포로된 백성들이 귀환하기 시작했다.

 처음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의 지도자였던 세스바살은 여호야긴 아들 세낫살로 여겨진다(대상 3:18). 그는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으나, 곧 일선에서 물러난 것 같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성전 건축은 그의 조카인 스룹바벨의 업적으로 돌려지고 있으며(스 3:6∼11), 학개도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언급하고(학 1:1, 14), 스가랴도 스룹바벨이 성전을 기초했다고 말한다(슥 4:9). 스룹바벨과 함께 4만여 귀환 백성들은 곧바로 종교공동체 형성의 구심점이 될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반대와 생활고로 기초공사 후 약 15년 동안 건축이 중단됐고, 이로 인한 재앙이 다가오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어 성전 건축을 독려했다. 그 결과 다리오왕 때에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돼 주전 515년에 성전 봉헌식을 거행했고,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했다. 

 그로부터 6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 7년(주전 458년)에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아하와 강을 출발해 4개월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개혁 사업을 수행했다. 제사장 아론의 후손이며 율법에 익숙한 학사인 에스라가 야훼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귀환한 것이다. 첫 귀환 공동체의 신앙생활에는 문제점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 문제였다. 결국 에스라는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고 이방 여인들을 다 내어보내고 속건제를 드려 회개했다.

 아닥사스다 20년에 술관원장이던 느헤미야가 에스라보다 13년 늦게 제3차 귀환민들을 이끌고 수산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해 귀환공동체의 대외적 안정과 생활의 보호를 확립하고자 했다. 이때에도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대적들이 건축을 방해했다. 그뿐만 아니라 흉년이 들고 세금이 과중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느헤미야는 스스로 총독의 녹봉을 받지 않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예루살렘 성 재건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한 에스라의 영적 각성운동을 행정적으로 지원해줌으로써 보다 능률적으로 종교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했다.

 한편 포로에서 돌아오지 않은 유대 공동체의 생활상이 에스더에 기록돼 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답을 마련하고 집을 짓고 결혼하며 생활했다. 바사제국 시절에 나온 문서(Murashu text)에 보면 유대인들이 상업거래에 활발하게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모르드개는 정부의 관리가 됐고, 에스더는 왕비가 된 것도 그들이 적극적으로 이국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하만과 같은 유대인 혐오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멸망의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부림절은 그러한 위기에서 건짐 받은 것을 감사하고 서로 축하하는 축제이다. 구약에서 유월절이 어린양의 피를 통해 극적으로 죽음에서 피해온 것을 기념하는 처음 절기였다면, 부림절은 죽음의 위협과 싸워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마지막 절기가 됐다.    

 (목회·교육 담당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