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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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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우리나라가 개방에 적극 나서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서구 문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개화기에 서구 문물로 인해 웃지 못 할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령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없어진다고 생각했다든가, 자명종에 귀신이 붙었다고 푸닥거리를 한 것 등이다. 필자 또한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하였을 때 동네 노인분들이 모여 미국은 달 착륙을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토끼가 놀라 이리저리 뛰면 달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이 목소리 높여 외치던 모습을 반영하면 이들의 이러한 생각은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에 대한 무지일 것이다. 산업화 되지 않은 조선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사진기는 영혼을 빼앗아가는 악귀일지 모르나, 산업화되어 있는 서구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둘 수 있는 문명의 이기이다. 산업화되지 않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자명종은 귀신의 장난으로 보이지만 산업화된 사람에게는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사실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배척하는 가의 문제이다. 서구의 문물에 놀란 일본은 이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반면 서구의 문물을 상것으로 보고 쇄국을 택한 조선은 상당히 오래 동안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고통은 지금도 일부 이어지고 있다. 성경도 동일한 진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보블리오가 이러한 진리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보블리오가 멜리데 섬에 사는 야만인 중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묘사한다(행 28:1∼7). 보블리오가 비록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지만 야만인이라고 한 것은 당시 로마의 관점에서 볼 때 헬라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표현이다. 즉 멜리데에 사는 보블리오는 문명화된 로마 사회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사는 미개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어느 날 이들에게 파선된 배에 타고 있던 문명화 된 로마 사람들이 상륙하였다. 문명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뱀에게 물려도 죽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보블리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것은 환영하여 이들을 도와주든지, 아니면 배척하여 살해하든지. 보블리오가 선택한 것은 이들을 환영하여 살려주는 것이었다. 파선으로 인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청하여 3일 동안이나 먹여주고 재워주는 친절한 대접을 하였다. 그 결과 자신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부터 고침 받는 기적을 경험하였다(행 28:7∼10).
성경이 전달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눈에 기이할 수 있다.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말씀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전혀 반대일 수 있다. 시간이 곧 금이 될 수 있는 바쁜 현대의 사회에서 주일을 정하고, 그날을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은 곧 경쟁에서 뒤처지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많이 쌓아야 나의 재물이 되는 현실 속에서 내 것 중 일부를 포기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나선다는 것은 현실에 동떨어진 가르침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또 다른 세상, 즉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전적으로 따르지 못한 가르침이나 그 가르침은 선진화된 천국의 가르침이다.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 기이한 가르침이나 천국에서는 일상적인 가르침에 불과하다.
문제는 우리가 이 가르침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배척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배척하면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땅에서 나는 괴로움으로 고생할 것이다. 반면 이 가르침에 따르면 새로운 세상인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여 많은 복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보블리오는 바로 이러한 선택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택해 자신이 살면서 경험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린 사람이다.
이영호 교수(한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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