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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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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성령받고 각지로 흩어져 복음 전한 제자들 가이사랴, 정치·교통 중심지…선교 위한 루트 역할
구약시대를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근동의 각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됐다. 이처럼 각 곳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헬라어로 말할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을 말할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기 지역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매우 놀랐다. 그들은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포타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아,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등지에서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때 사도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자 3000명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다. 얼마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걷지 못하는 자를 일으키고 전도하자 5000명의 남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에 의해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고 신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지게 됐다(행 8:1). 이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 중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치료받고 귀신들이 떠나감으로써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그후 빌립 집사는 주의 사자의 말씀을 듣고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떠났다. 거기에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이사야에 기록된 고난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언해 침례를 받게 했다. 빌립은 성령에 이끌려 아소도의 여러 마을에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머물렀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의 전도 소식을 듣고 사마리아로 내려가 제자들을 권면하고 성령 충만을 받게 기도했다. 베드로는 계속 사방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던 중, 룻다에 사는 애니아가 중풍병에 걸린 것을 치료했다. 그 기적으로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다비다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기적을 나타내기도 했다. 도르가라고도 하는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는 여제자로 그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과부들이 베드로에게 눈물로 간청하자 베드로가 다비다를 죽음에서 일으켰다. 베드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게 된 것이다(요 14:12). 베드로가 욥바에서 여러 날을 머물 때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 베드로를 청했다. 가이사랴는 갈멜산 남쪽 23마일 지점으로 로마제국이 정복한 후 헤롯 대왕에게 주었는데, 헤롯은 황제를 기념해 가이사랴라고 이름을 바꾸고 12년간에 걸친 대대적인 공사를 하여 훌륭한 항구도시로 건설했다. 가이사랴는 전차 경기장과 음악당, 극장, 고가수로, 황제숭배신전 등 각종 시설을 갖춘 전형적인 헬레니즘 도시였다. 이곳에서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에게 전도함으로써 이방인 선교에 대한 공식적인 문이 열리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가이사랴는 총독이 거주하는 정치적 중심지요, 교통의 요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가 됐다. 빌립 집사는 여러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가이사랴에 정착했고, 바울이 예수님을 믿은 후 고향 다소로 갈 때 가이사랴 항구를 이용했다. 그후에도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으며, 그리스도를 인하여 체포된 후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로마로 압송됐다.
(목회·교육담당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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