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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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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12제자를 택하셨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부족했지만 주님께서 가르치시고, 권능을 주시고, 파송하셨을 때 자기들조차 놀랄 정도로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눅 10:17).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듣고, 배우고, 능력 있는 사역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했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조차 놀라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성장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올라왔건만 예수님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하거나, 부인하거나, 아니면 도망하고 말았다. 마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42.195㎞의 정규 코스를 거의 달려오다가 마지막에 주경기장에 들어가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것과 같은 형국이다. 이들은 제자의 길을 출발만 했을 뿐, 그것의 완결 여부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이 때, 그동안 성경 내러티브의 전면에 부각되지 않았던 무명의 인물들이 무대 중앙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마치 전장(戰場)에서 깃발을 든 병사가 쓰러지자 다른 병사가 그 깃발을 대신 들고 돌격하듯이 12제자들의 빈자리를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번에 살펴본 맹인 걸인 바디매오이다.
그는 주변에서 꾸짖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서 주님의 자비를 구했다. 예수님께서 그를 (세 번 강조해서) ‘부르시자’ (걸인의 전 재산인) 겉옷을 ‘내버리고’ 주님께 달려 나갔다. 그리고 주님께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명확히 대답했다. 주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시자 바디매오는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랐다”(막 10:52). 여기에서의 “길”은 십자가를 향한 길이고, “따르다”(‘아코루떼오’)는 동사는 제자의 직무를 나타내는 전문용어라고 성경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부활과 오순절 이전의) 12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오해하고, 불편해하고, 심지어는 거부한 반면에, 이름 모를 (비공식) 제자는 육의 눈과 함께 영의 눈까지 열려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따랐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공식” 제자들과 “비공식” 제자들 사이의 일대 반전이 일어난다. “내부자”가 “외부자”가 되고, “외부자”가 “내부자”가 된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같은 “비공식” 제자들 중에 여성 제자들이 많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구 세계에서도 여성 인권이 크게 신장된 것이 불과 백여 년 전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름 없는 제자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여성 제자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12제자들이 사라진 이후에 나타난 여성 제자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순간 십자가 곁에 서 있던 로마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막 15:39). 바로 다음 구절에 마가는 멀리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바라본 여인들 중에서 세 명의 명단을 소개한다.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그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음 구절이다.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막 15:41).
이것은 지금까지 복음서 기록에 없던 내용이다. 이 구절은 이 여성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우선 이들은 십자가 처형이 진행된 장소인 예루살렘 거주민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부터 그를 “따르며”(아코루떼오) “섬기던”(디아코네오) 여인들이었다. 여기에서 “섬기다”라는 동사도 “따르다”라는 동사와 마찬가지로 제자의 직무를 표현하는 전문용어이다. 그렇다면 이 여성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던 여성 제자들이라는 말이 된다. 더 나아가 이런 갈릴리 여성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마가는 서술한다. 이들 중에 세 명의 이름만 밝혀졌을 뿐이다.
성경 누가복음 8장 1∼3절에는 이 갈릴리 여성 제자들의 또 다른 측면을 밝혀준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그러므로 이 여성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예수님 일행을 따르며 물질로도 섬긴 익명의 ‘제자들’임이 분명해진다. 이들은 남성 제자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처음 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 시작부터 끝까지 늘 주님과 함께 한 진정한 제자들이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매장, 부활의 증인들
12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이후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여성제자들이 전면에 나타나는데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의 목격자들이 된다는데 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막 15:40∼41)와 매장(막 15:42∼47), 그리고 부활의 증인들이 된다(막 16:1∼8).
예수님의 십자가와 매장과 부활은 특히 초대 교회에서 매우 중요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사도신경’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매주일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이 세 가지 요소가 빠짐없이 들어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예수님의 매장은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이것은 초대교회의 생존을 위협한 가장 강력한 이단 중 하나였던 ‘영지주의’(靈知主義) 분파들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한데서 기인한 것 같다. ‘영지주의’란 영은 선하지만 육은 악하다고 보는 극단적인 이원론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그들의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가 (그들이 악하게 여기는) 육신을 입으셨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神性)만 인정하고 인성(人性)은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100% 영이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신 것처럼 가장’하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학자들은 ‘가현설’(假現設)이라고 부른다. 성경 요한일서 4장 2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 즉 가현설을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규정한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서 예수님의 매장은 매우 중요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완전한 육체적 죽음이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살펴보겠지만 성경은 12제자 이외에도 이름 없는 수많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2천 년 전에 기록된 ‘고대문서’에 여성의 역할이 그 어떤 남성들의 모습보다 더욱 비중 있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의 십자가 처형의 현장, 예수님의 시신의 매장지, 그리고 부활의 새벽까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묵묵히 섬기며 따라간 이름 없는 여성 제자들이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의 클라이맥스의 어느 한 부분도 빠짐없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김호성 목사(국제신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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