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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침례를 받은 최초의 육체적 증거 … 방언
  관리자
 
     
  ⑩성령침례를 받은 최초의 육체적 증거 … 방언 
오직 성령충만해야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게 돼


 순복음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령’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소속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의 교단헌법에 기록된 신조와 교리에는 ‘성령침례’를 ‘모든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아버지의 약속, 즉 성령과 물로 침례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또한 간절히 사모하고 간구해야 한다. 이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의 일반적인 영적 체험이었다. 이 체험은 삶과 봉사를 위한 권능이 입혀지며, 은사가 주어지고, 사역에 역사를 일으킨다(눅 24:49, 행 1:4, 고전 12:1∼31). 이 체험은 거듭남(중생)과 구분되며, (중생과) 동시에 또는 후속적으로 오는 체험이다(행 8:12∼17, 10:44∼48, 15;7∼9)’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성령침례를 받은 최초의 육체적 증거는 무엇일까? 위에 소개된 신조와 교리에는 이에 대해서도 ‘성령침례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최초의 육체적 표적으로 증거 되었다(행 2:4) 사도행전은 성령침례 시 방언을 동반하는 것이 보편적임을 증거하고 있다(행 2:4, 10:45∼46, 19:6). 이 경우에 방언을 말함은 본질상 방언의 은사와는 같으나(고전 12:4∼10, 28), 그 목적과 사용에 있어서는 다르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다시 말해 성령침례를 받은 최초의 육체적 증거는 바로 ‘방언’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성령침례와 성령충만의 사건이 기록된 사도행전 2장을 살펴보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사도행전 2장 4절은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한다.

 방언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50일 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위에 임하여 있더니 모두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에는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자들 위에 성령이 임하시고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일 후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그곳에 모인 제자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안수하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은 특히 사도행전은 성령침례와 방언의 밀접한 관계성을 반복해서 드러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를 통해 자신의 죄를 자복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와서 가득 임재하시고 역사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이다. 그 성령충만을 체험하는 첫번째 사건이 ‘성령침례’이며 그러한 성령침례를 체험한 최초의 육체적 증거가 바로 ‘방언’이다. 성령은 중생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확신을 우리의 마음속에 심어주신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을 알게 되고 힘써 예수님을 믿게 된다. 그리고 성령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빛이 비취지 아니하면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고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비로소 우리의 입술에서 방언이 나오게 된다. 방언은 표적의 방언과 은사의 방언으로 구별된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순간 우리가 성령충만했다는 표적으로서 우리 입에서 방언이 나온다. 그 후에 이러한 방언을 계속 우리가 말하게 되면 이것은 은사의 방언으로 변화되어 항상 기도할 때마다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다. 두 가지 모두 똑같은 방언이나 처음 성령침례 받을 때는 표적의 방언으로 성령이 충만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고 성령침례를 받고 난 다음 성령충만하여 이후에도 계속해서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면 이것은 은사의 방언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많은 은총과 축복을 주시는 통로가 된다. 

 

김에녹 목사 henoch9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