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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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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자, 침례 요한 침례 요한은 신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였고,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예언을 하였고, 헤롯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목이 잘려 죽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 11장 2∼6절에서 또 다른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제자들을 예수님에게로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의 의미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대답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인자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앞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실족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가의 여부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신 6가지 일들 중 사람들을 실족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소경이 보게 된다거나 앉은뱅이가 걷는 것, 문둥이가 치료되어 깨끗하게 되는 것과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기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남는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 실족거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들 중에는 사람들이 이해하여 동의하는 것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여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가령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귀감이 되어 다른 사람들 또한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갖게 되었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를 인정하기 보다는 그가 그렇게 된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며, 그가 가진 지위와 권력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을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 또한 같은 원리이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어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많은 사람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측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그 가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또한 실족거리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 원인을 침례 요한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한 답변은 사실 이사야서가 담고 있는 메시아 예고를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중,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의 예언은 인용하지 않으셨다. 구약에 정통한 침례 요한이 예수님의 행적을 들었을 때 한 가지 예언만 더하면 그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이었다. 중요한 것은 침례 요한에게는 다른 예언보다는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자기는 악한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을 인용하지 않으신 것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심판은 연기되어 있다. 그 이유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침례 요한이 기다리는 악인에 대한 심판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자신을 가둔 헤롯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은 곧 목이 잘려 죽게 될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여러 종류의 신앙 형태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역사이다. 그중에는 질병을 극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 성도가 있는가 하면, 주님 주신 능력으로 귀신을 쫓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불의와 맞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에 이른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보며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침례 요한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여자가 낳은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침례 요한은 가장 비참하게 살았으나,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드러낸 사람이다.
이영호 교수(한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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