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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영성 - 생각(11)
  관리자
 
     
  4차원 영성 - 생각(11) 
자신이 그린 자화상 따라 환경과 운명 결정돼


 누구든지 사람은 모두 자신의 마음 판에 스스로 어떤 자화상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가 그린 자화상을 따라 생각하고 꿈꾸며 그것을 따라 신념을 품기도 한다. 또한 그것을 따라 입술로 고백하게 되고 바라보게 되며 행동한다. 스스로 용감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말과 행동을 용감하게 한다. 그러나 비열하고 비굴한 자화상을 스스로 품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비열하고 비굴하게 행동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화상’의 힘이다.

 이러한 자화상과 관련하여 노만 빈센트 필 (Norman Vincent Peale) 박사의 ‘독수리와 닭’이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어느 날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이 근처 산에서 발견한 독수리 알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암탉이 자신이 낳은 달걀을 품기 시작 할 때 그곳에 그 독수리 알을 살짝 집어넣었다. 드디어 달걀에서는 병아리가 독수리의 알에서는 새끼 독수리가 깨어났다. 그런데 이 새끼 독수리는 자기가 병아리라고 생각하며 병아리와 똑같이 행동을 하고 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커다란 독수리 한마리가 그 닭장의 상공을 날아 바람을 타고 멋지게 맴돌다 지나갔다. 그 순간 새끼 독수리가 자세히 그 모습을 바라보니 자신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새끼 독수리는 ‘우와! 너무나 멋진 모습으로 나는구나! 그런데 저 모습은 나하고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 다른 병아리들과 전혀 닮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공중에 날아가는 저 어마어마한 새하고 내가 정말 많이 닮았구나. 나는 병아리가 아니고 독수리였던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비로소 자신의 참된 자화상을 발견하게 됐다. 그 순간 그 독수리는 병아리처럼 갇혀 있던 닭장을 벗어나 푸른 창공으로 훨훨 날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에 그려져 있는 자화상에 따라 환경이 조성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하며 운명이 형성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화상은 그것과 잘 어울리고 걸맞는 환경을 자기 주위로 불러들인다. 왜냐하면 자화상에는 비슷한 동류(同類)끼리 어울려 함께 모이는 ‘무리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자기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자기의 마음 판에 그려진 자기 자화상을 스스로 올바르고 건전하게 바꾸고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들은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옛사람처럼 이 세상을 살면 안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모습을 바라보며 그러한 ‘십자가와 구원의 자화상’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고 기록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조차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해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이 ‘나는 무엇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일거야’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자신이 갖고 있는 재물을 기준으로 스스로 자신을 괜찮은 사람 또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위라든지 사회적인 직함이나 재물 등의 허울을 벗겨낸 후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거나 또는 자신의 직업이나 사회적인 직함을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답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내가 누구인가?”이어야 한다.

 성경은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화상 즉,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이라고 불러 주셨는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의 기준이다. 우리의 자화상과 삶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열매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