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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의 성공과 실패
  관리자
 
     
  므낫세의 성공과 실패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은 ‘경제’ 아닌 ‘신앙’
국가적 번영 이룩한 므낫세왕 우상숭배로 책망받아


 구약의 돌아온 탕자인 므낫세 왕은 유다의 왕들 중에서도 훌륭한 왕으로 평가를 받은 히스기야의 늦둥이 아들이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때 므낫세가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므낫세는 야훼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의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 그는 일월성신을 섬기며 자기의 아들을 불사르는 인신제사를 드렸으며, 각종 사술을 행하여 야훼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 그와 더불어 백성들이 악을 행한 것은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가나안의 여러 민족보다 더욱 심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므낫세의 죄로 인하여 예루살렘과 유다를 멸절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 손자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켜 산당을 제거하고, 우상을 타파하며, 유월절을 다시 지킴으로 신앙을 새롭게 하려 했으나, 므낫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이다(왕하 23:26).

 이러한 유다 멸망기의 역사는 학문적인 관점으로 말하면 신명기적 역사가의 관점으로 서술된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신명기의 가르침이란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면 마침내 심판을 받고 나라가 멸망하게 되지만, 순종하고 율법을 청종하면 복을 받고 나라가 번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평면적으로 압축된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확장시켜보면 성경의 가르침을 보다 선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므낫세를 성경에 나타난 가장 악독한 왕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그의 전반적인 삶의 여정이 모두 악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므낫세에 대한 평가는 좁은 의미로 말하면 종교적인 평가이다. 그의 정치적 경제적 활동은 종교적인 것보다 나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히스기야 시대는 북왕국의 멸망으로 남북통일의 꿈이 고조되던 시대였다. 더구나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가 앗수르에 대한 굴욕적 외교정책을 폄으로써 백성들의 신망을 상실했으며, 막중한 조공에 대한 부담으로 백성들의 반발이 심한 상황이었다. 그 때 히스기야의 앗수르에 대한 저항 정책은 한동안 백성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잃어버린 북쪽 영토를 회복하려는 민족 운동의 실패와 앗수르의 경제봉쇄로 유다의 경제 상황은 극히 어려워졌다. 대제국 앗수르는 유다의 주변국들을 정복했으므로 유다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경제적인 교역이 어렵게 되었으며,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지루한 전쟁으로 인하여 국가경제는 피폐해졌다. 점점 백성들 가운데 차라리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더라도 경제 교류의 길을 열어 놓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고조되었다. 그러는 중에 히스기야는 이렇다고 할만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회복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런데 므낫세가 통치하면서 앗수르의 비호 아래 국제무역이 활성화되면서 국내 경기가 회복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경제회복은 앗수르에 대한 정치적 굴욕과 야훼 신앙에 대한 배신에 의한 것일지라도 적지 않은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앗수르도 속국인 유다의 경제적 부흥이 자국에 이득이 된다고 여긴 것 같다. 그것은 유다가 앗수르의 대적 이집트에 대한 완충역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자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앗수르는 유다에 대해 정치적 배려와 조공의 혜택을 주었다. 그래서 므낫세의 재위기간 동안 유다는 평화를 누렸으며, 경제적인 번영과 인구증가로 인하여 거주지역이 확장된 증거를 보여준다. 유다는 올리브기름을 앗수르에 수출하는 주요 국가였으며, 아라비아의 대상무역에도 관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다는 히스기야 시대보다 므낫세 시대에 안정과 풍요를 누렸으며, 백성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므낫세가 경제적으로 안정과 발전을 이룩했다고 할지라도 신명기 역사가의 평가는 단호했다. 그의 관심은 경제가 아니라 종교,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있었다. 그러므로 므낫세의 경제 우선 정책은 잘못된 것이며, 그의 종교정책은 책망 받아야 마땅한 것이었다. 므낫세 시대 유다의 물질적인 약간의 성공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고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는 길을 놓쳐버린 마지막 실패였다. 


한상인 부목사(교육·개척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