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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보여드리는 기도
  관리자
 
     
  히스기야의 보여드리는 기도 

말과 몸이 일치된 기도…능력과 응답의 힘 있어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도라면, 마음으로 생각하는 기도는 묵상기도이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생각이 너무 복잡해 말로 정리하기 어려울 때 몸으로 보여드리는 기도를 올린다. 종이 상전을,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는 그 간절한 표정을 결코 가볍게 물리칠 수 없다. 눈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의 표정과 몸짓을 보지 않으시랴!


 1. 편지를 보여드린 히스기야


 히스기야 시절에 강대국 앗수르는 유다의 굴복을 요구했다. 고대에는 정치적 군사적인 굴복이 종교적인 복종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신앙심이 투철한 히스기야는 약소국의 왕이었지만 앗수르에게 저항했다. 그러자 앗수르의 사신이 앗수르가 유다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했는데, 유다가 어찌 항거하느냐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들고 참담한 심정으로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기도를 올렸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야훼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야훼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야훼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야훼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왕하 19:14∼16)

 하나님이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눈을 떠서 보신다는 말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사실 피부에 와닿는 말이다. 하나님을 사람과 같은 속성과 모양으로 묘사하는 ‘신인동성동형론’적인 표현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성경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모습과 행동을 살펴보시는 분이심을 알게 된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이 보시도록 편지를 써보자. 어떤 며느리가 차마 시어머니의 흉을 보는 기도를 드릴 수 없어서 하나님께 편지를 썼다. 골방에 가서 며느리가 편지를 꺼내들고 하나님께 펼쳤다. “하나님, 보시옵소서!” 편지로 고자질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편지를 읽으신 후에도 골수 불교신자인 시어머니의 핍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며느리의 ‘하나님전상서’는 계속됐다. 그런데 편지를 쓰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편지를 쓰는 며느리의 마음이 변했다. 달달볶는 시어머니가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며느리의 편지기도가 며느리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런 후에 시어머니의 불심이 예수님에 대한 신심으로 바뀌었다.


 2. 눈물을 보여드린 히스기야


 편지 기도의 응답을 받고 기적적으로 앗수르를 물리친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됐다. 이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이에 야훼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 38:4∼6)

 하나님은 기도소리만 들으신 것이 아니라 눈물을 보셨다. 마치 친정집에 와서 어려운 사정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시집간 딸의 눈물을 얼핏 본 친정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못하신다. 이처럼 말과 몸이 일치된 기도의 능력과 응답의 힘을 아는 이사야는 금식하면서 다투는 사람들에게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사 58:4∼5)라고 책망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표정과 몸짓을 보신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다. 우리말로 ‘받았다’고 번역한 히브리어 ‘솨아’는 ‘응시하다 둘러보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과 그의 정성스러운 몸짓을 보시고 열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받지 않으신 가인의 제물과 그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한상인 부목사(교육·개척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