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홈페이지 영어 홈페이지
 
홈 > 자료실 > 칼럼자료
 
 
 
 
 
화평, 공의의 열매로 십자가 은혜 통해 얻어
  관리자
 
     
  화평, 공의의 열매로 십자가 은혜 통해 얻어 
 성령의 열매에서 다룰 세 번째 주제는 ‘화평’이다(갈 5:22). ‘화평’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에이레네’는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평안’(마 28:9), ‘평강’(요 20:21)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구약 성경의 ‘샬롬’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뜻으로 사용된다. 하나님 나라는 평강이 넘치는 곳이다(롬 14:17).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시는 지도자와 그 나라에 평안을 주셨다(삼하 7:1; 대하 14:6). 성경은 평강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한다(레 26:6; 욥 25:2; 시 29:11).     

 그렇지만 인간의 끊임없는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부터 인간을 단절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성경은 이에 대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고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인간을 하나님과 갈라놓았던 죄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이 되어 고통당하며 탄식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평강주시기를 원하신다(민 6:26; 살후 3:16). 처음에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의 약속이 주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경계선을 허무셨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이 확장되었음을 말씀한다. 성령으로 세워진 새로운 공동체는 특정 민족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포함하게 되었다. 성경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는 만유시고, 만유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엡 4:6; 시 103:19). 

 하나님께서 이 위대한 일을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 그리고 성령으로 이루셨다(엡 2:11∼18).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공의로 다스릴 한 왕이 나타날 것임을 말씀하셨다(사 32:1; 렘 33:15). 성경은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고 말씀한다. 공의의 결과로 화평이 이루어진 것이다(사 59:8; 슥 8:1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권세를 주시고 만물을 복종하게 하셨다(마 28:18; 엡 1:20∼22). 누구든지 성령으로 믿음을 따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게 된다(갈 5:5). 

 우리는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 성령은 우리를 화평으로 인도하신다. 예수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이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엡 5:1). 성경은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한다(엡 4:1∼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한다(마 5:24; 롬 12:18; 살전 5:13). 

 화평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결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도록 해야 한다(골 3:15). 성경은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한다(롬 8:6). 성령은 우리에게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혀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깨닫게 하신다(엡 3:16∼19).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과 사랑 안에서 화목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다(엡 4:13). 


국제신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