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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하라
새 생명과 주권이양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말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의미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성장이 있다.
성경에서는 구원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구원을 받았다.’는 완료형과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현재형 그리고 ‘구원을 완성하리라.’는 미래형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고, 현재의 삶에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며, 미래에는 그 구원이 완성될 것이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로 표현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10절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하며,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현재의 삶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며, 또한 구원이 완성될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완료형의 구원을 ‘신분의 구원’으로, 현재형의 구원을 ‘수준의 구원’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분의 구원 VS 수준의 구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지며 영원히 변치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수준의 구원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자빠지는 실수도 무수히 일어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었다. 신분이 변하면 사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신분만 하나님의 자녀이고 삶의 수준은 신분과 상관없이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으니 내 구원의 문제는 모두 끝났다. 이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자.’고만 생각한다. 실생활에 나타나는 구원받은 자의 삶, 수준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다. 그러면 구원 받은 후의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새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말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말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의미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성장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우리들도 반드시 그 생명을 성장시켜서 성숙해야만 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원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신앙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완전히 주장하시고 다스리신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일을 얼마만큼 했느냐에 달려 있다.
구원 그 이후의 삶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도록 그 생명의 주인 되신 주님께 나의 주권을 온전히 맡기는 삶이다. 나의 주권을 온전히 주님께 이양시키는 삶, 이것이 곧 신앙의 성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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