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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열전 ⑧ 도마의 의심을 선용하신 하나님
  관리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해의 대제사장은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였다. 그는 예수님을 처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유대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라고 권고한 사람이다(요 18:14). 그가 이렇게 한 말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의 상황과 연결하여 연구해야 한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유월절에 메시아 운동이 발생하곤 하였다. 로마는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서북쪽에 안토니아 요새를 건설하고, 700∼1500명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주둔 병사가 차이 나는 것은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때에는 700여 명의 군사로 충분하지만, 순례객들로 붐비는 절기에는 더 많은 군인이 감시해야 했다.

 만약 성전에서 메시아 운동이 발생하면, 이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군대가 출동하였고, 군대는 그 운동을 일으킨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체포하여 처형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메시아 운동의 주동자인 예수 한 사람을 처형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주변의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된다. 가야바가 한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가야바의 심중에는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리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처형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가야바가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처형하기 위해 하나의 악한 꾀를 고안한 것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도 바로 이점이다. 가야바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원래 의도를 감추고 악한 꾀로 예수님을 처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악한 꾀를 역으로 사용하셔서, 예수님께서 만인을 위한 대속의 죽음을 하게 하심으로 모든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신 것이다.

 도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없던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고 주장한다. 여드레 후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4∼29)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에는 모두 7개의 표적이 등장한다. 공관복음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러한 현상은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표적이 현저하게 적게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 예수님의 이적적인 행위들을 공관복음에서 기적, 혹은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관복음과는 달리 하나의 표적이 등장하면 그 표적에 대해 깊은 설명을 제공한다.

 이러한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 우리는 도마의 의심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당시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저자는 회중에게 잘 알려져 있어서, 그 역사성을 의심할 수 없는 사건들을 선별하였는데, 그것들이 바로 요한복음의 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믿지 못하던 도마의 의심이 나중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적적인 행위들을 믿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인간의 의심이라는 나쁜 습관을 하나님께서는 선용하신 것이다.

 우리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가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대해 낙심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주의 일들이 너무 많지만 한 것들이 너무 적어 송구스러운 느낌을 가질 때도 있다. 더 나아가 내 욕심을 위한 신앙, 내 욕심을 위해 신앙을 이용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오랫 동안 괴로워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 안에 있는 한, 우리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고 있는 한, 가끔은 의심이나 욕심,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얻기 위한 나쁜 목적을 가진 모습이 나타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조차 선용하시는 분이시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도마의 의심.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도마의 의심조차도 우리의 신앙을 위해 선하게 사용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이영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