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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
많은 신앙인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큰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다비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기독교사에 새겨질 위대한 기적인 동시에 다비다의 입장에서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은혜와 기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들에게 기적과 이사,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준비된 자들에게 기적과 이사가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 즉 준비된 신앙이 있으면 준비되지 않은 사람보다 하나님의 기적과 기사, 은혜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보다 큰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사도행전 9장 36∼42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본문에서는 다비다가 죽었을 때 다른 과부들이 그가 지은 속옷과 겉옷을 보이며 울었다(행 9:39)고 보도한다. 우리는 이 보도를 통해 다비다의 평소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비다가 생전에 다른 과부들과 함께 속옷과 겉옷을 지었으며, 이를 팔아 생활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비다가 평안한 가운데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낙망과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에 종사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추정을 다비다가 다른 과부들과 함께 일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과부들과 함께 일한 다비다 또한 혼자 사는 과부였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비다는 남편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바느질을 해야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다비다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절대 절망의 가운데서도 힘과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했다는 것이다.
다비다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정상적인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절망의 상태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일을 할 때에 발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도 일하시는 분(요 5:17)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일하기를 싫어하면 먹지도 말라고 명령(살후 3:10)하셨기 때문이다. 절망 중에 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행할 때에 이를 통해 보다 더 큰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는 분(마 25:11)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다비다는 이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되었다.
다비다에게 큰 기적이 발생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다비다가 일한 것이 혼자 혹은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다비다가 죽었을 때에 다른 과부들이 속옷과 겉옷을 들어 보이면서 울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 다비다가 한 일을 선행과 구제라고 말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과부들 모두가 다비다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것은 다비다가 그들에게 미친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비다가 그들에게 산업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결국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 은혜와 축복은 이러한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한세대학교 이영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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