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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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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소망을 잃지 말자
하나의 조직을 살리기도 하고, 괴사하게도 하는 것이 인사(人事)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사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자리를 위해 기존에 있는 사람을 다시 교육시켜 그 일을 맡기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새로 발탁해서 그 일을 맡기는 경우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사람을 재교육시키는 방법의 장점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단점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바꾸는 경우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이 방식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단점은 새로운 사람을 위해 기존의 사람이 희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인사 방식을 택하고 있을까? 이를 위해 우리는 사도 바울과 요한 마가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 마가는 사도행전 12장 12절에서 처음 등장한다.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기독교 초기에 그의 집은 성도들이 모이는 구심점이 됐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했다는 보도(행 12:12)는 이러한 판단을 지지해 준다. 어머니의 신앙은 자연스럽게 요한 마가에게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요한 마가는 바나바와 사도 바울을 따라 안디옥으로 왔으며(행 12:25), 이후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동행했다고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 마가의 신앙은 험난한 전도 여행을 감당할 만큼 성숙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에 대한 근거를 사도행전 13장 13절과 15장 38절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에서는 요한이 버가에서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후자에서는 바울이 마가를 2차 전도여행에 데리고 가는 것을 반대한 이유가 밤빌리아에서 요한이 그들과 한 가지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러므로 요한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과 같이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이 없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이탈하기도 하는 책임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심하게 다투고 헤어지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행 15:39).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요한 마가의 신앙이 성숙해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몬 1:24). 이러한 모든 언급들을 통해 우리는 요한 마가의 신앙성장과정을 어느 정도 추정해 낼 수 있다. 요한 마가는 어머니와 외삼촌 바나바의 신앙과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가계가 가진 만큼의 신앙이 그에게는 없었으며, 시련이 오자 흔들렸다. 그러나 믿음으로 연단을 받은 그는 곧 바울에게도 인정되었으며, 바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사회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가 있다. 특히 자신 보다 신급이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평할 때가 있다. 아니면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할 때가 있고, 이럴 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사람을 바꾸기를 원한다. 그러나 비록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더라도 사람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서라도 인내하고 기다리며, 그 사람이 모든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사람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영호 교수(한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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