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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 여정
  관리자
 
     
  출애굽 40년 만에 광야 인생 끝나 
하나님 인도하심 불구, 죄 지은 이스라엘 
모세 느보산에서 가나안 바라보며 숨거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반도로 들어갔다. 시내 반도는 북쪽 동서 폭이 240㎞, 남북 길이가 416㎞, 넓이 10.4만㎢에 달하는 거대한 광야이다. 북쪽으로 지중해와 팔레스타인, 동쪽으로 홍해의 아카바만, 서쪽으로 홍해의 수에즈만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북쪽 길 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 견해가 출애굽기 17장 8절과 조화되며, 출애굽기 16장의 메추라기 내용과도 연결된다고 하지만, 블레셋 길로 가는 것을 금지한 내용(출 13:17)이 약점이다. 두 번째로 중앙로 가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반도 중앙을 뚫고 동쪽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시내 산을 이스라엘 남부에 있는 하르 카르콤, 에돔의 세일산(수 5:4), 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라우즈 산 등과 연결시킨다. 특히 알 라우즈 산에는 산꼭대기에 불에 탄 흔적이 있고(출 19:18),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돌기둥들도 발견됐다(출 24:4). 그러나 세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쪽으로 진행하는 경로를 택했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출발지인 라암셋(출 12:1)은 나일 강 지류의 동쪽에 위치한 타니스에 근접하고 있다. 타니스는 성경의 소안이며, 힉소스 시대의 아바리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에서 숙곳, 에담을 거쳐 비하히롯 즉 바알스본 근처로 이동했는데(출 14:2), 이곳으로 애굽 군대가 추격하였을 때 바다가 갈라져 시내 반도로 건넜다(출 14:21). 그 다음으로 마라(현재 아인 하와라), 엘림(현재 와디 가란델), 신 광야, 르비딤에 이르렀다.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첫 전투가 있었을 때 여호수아는 싸우고 모세는 기도했으며 아론과 훌은 모세의 기도를 도왔다(출 17:8∼16).

 야훼 닛시를 체험한 이스라엘이 도착한 시내 산은 가시덤불의 뜻을 가진 세네, 또는 셈족의 달의 신인 신(Sin)에서 유래된 용어이며, 호렙산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모세의 산’이라고 불리는 봉우리를 가진 산은 2285m의 제벨 무사이며, 시내 산의 중턱에는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순교자의 이름을 따라 세운 성 캐더린 수도원이 있다. 시내산 아래의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 정도 머무르며 율법을 받았으며(출 19∼31장), 금송아지 사건(32장), 성막의 제조(출 35∼40장), 인구조사(민 1∼2장) 등의 사건들이 있었다.

 시내 광야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전진하게 되는데,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정세를 알아보게 했다(민 13장). 이곳은 헤브론 남쪽 70마일 지점으로 오늘날 아인 카데이스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이때로부터 시작됐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의 정탐꾼이 극히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 말씀에 순종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불순종의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고마는 준엄한 심판이 내려지게 됐다. 광야는 어둠과 죽음, 온갖 역경과 고난이 가득찬 곳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므로,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기적을 체험하며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살아남게 됐다. 형벌의 기간이 끝나는 출애굽 40년째에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민 20:1)를 떠나 홍해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에시온게벨까지 당도한 후 북쪽으로 진행해(민 21:10∼20), 모압평지에 다다랐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과의 전쟁(민 21:21∼32)을 한 후, 바산 길로 올라가 옥을 정복해(민 21:33∼35) 요단 동편을 차지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의 죽음을 맞게 됐다. 모세는 느보 산(현재 제벨 엔 네바)에서 가나안을 바라다보며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갔다.

국제신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