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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들, 여호수아 사후부터 사무엘 통치기까지 활동
주전 20세기에 이집트에서 나온 시누헤 이야기를 보면 당시의 성지에는 야생 꿀과 과일의 당유액이 많았고 소와 양의 젖도 풍부했다. 그 뿐만 아니라 40년의 긴 세월을 광야에서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성지는 샘과 수자원이 곳곳에 있고 비교적 풀과 나무도 많이 있는 풍요로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더구나 사막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요단강 건너편의 오아시스 성읍인 여리고는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여리고는 사해 북서쪽 16km 지점에 위치한 현재의 텔 에스-술탄의 언덕에 있는 유적이다.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하는 이스라엘 군대들은 먼저 말씀을 의지해 여리고 성을 일주일 동안 행진하여 여리고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아간의 죄로 인해 1차 공격에 실패했던 아이 성을 점령함으로써 중앙 팔레스타인 지역을 손에 넣게 됐다. 남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다섯 개의 도시국가들인 예루살렘과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등을 길갈에서 진군한 여호수아가 아얄론 골짜기에서 공격 패배시켰다. 이때 하늘의 태양이 멈추고 달이 운행을 중지하는 기적이 나타났다(수 10:13). 이어서 북쪽으로 진군한 여호수아 군대들은 하솔 왕 야빈의 지도 아래 있는 북부 도시국가들의 연합국과 메롬에서 싸웠다. 오늘날 메롬은 훌라 호수나 하솔 남서쪽 메이론으로 추측된다.
가나안의 정복을 끝내고 점령한 땅을 분배할 때, 요단 동편에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 가나안 남부에 유다와 시므온, 베냐민, 단 등의 네 지파, 가나안 중심부에 에브라임과 잇사갈, 므낫세 반 지파, 가나안 북부에 아셀과 납달리, 스불론의 세 지파가 거주했다. 그 분배방식이 제비뽑기에 의한 것이어서 각 지파의 기업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 지파는 나중에 북쪽 라이스 지역으로 이동했으며, 레위 지파는 영토는 없으나 48개의 레위인의 도시가 주어졌다. 레위 지파의 성읍 중에는 6개의 도피성이 있었는데, 요단 동쪽에 베셀과 길르앗라못, 골란, 요단 서쪽에 헤브론과 세겜, 게데스 등이 있었다.
여호수아에 의한 가나안 정복이 끝난 후, 사사 시대가 시작된다. 사사란 통치자, 재판관의 뜻으로 평화시에는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다스리며, 전쟁 시에는 군사 지도자로 활약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사들은 여호수아의 사후부터 사무엘의 통치기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사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12명의 사사들과 그들이 소속한 지파와 영역은 다음과 같다.
옷니엘은 남쪽 지파인 유다의 드빌 출신이며, 메소포타미아의 구산리사다임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왼손잡이 사사로, 모압 왕 에글론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했다. 삼갈은 아낫의 아들로 납달리 지파이며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물리쳤다. 드보라(에브라임 지파의 여사사)와 바락(납달리 지파)은 가나안 왕 야빈과 시스라 장군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로 미디안과 아말렉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돌라는 잇사갈 지파로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했다. 야일은 길르앗 사람으로 하봇야일에 거주했다. 입다는 길르앗 출신으로 암몬으로부터 이스라엘 구출하였으나 6년 통치 기간 중 무남독녀 번제 사건과 에브라임 지파와의 갈등이 있었다. 입산은 유다 지파로 7년 통치했다. 엘론은 스불론 지파로 10년 통치했다. 압돈은 에브라임 지파의 비라돈 사람으로 8년 통치했다. 마지막으로 삼손은 단 지파 소라에서 출생했으며, 블레셋 지배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20년을 다스리다가 사로잡혀가 가사에서 다곤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었다.
(국제신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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