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관리자 |
|
|
| |
|
|
| |
이스보셋 사후 다윗, 예루살렘 시작으로 약속하신 땅의 언약 성취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전환기적 인물인 사무엘은 그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라마에서 출생했다. 그의 사역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다가 빼앗기는 민족적 비극과 더불어 시작됐다. 언약궤는 당시 성전이 있던 실로에서 전쟁터인 에벤에셀로 모셔졌으나 블레셋에게 빼앗겨 아스돗의 다곤 신당에 두어 재앙이 임하자 블레셋의 도시들인 가드와 에그론을 거쳐, 이스라엘 땅인 벧세메스로 보내졌다. 언약궤를 옮기는 어미 소들은 해안평야에서 벧세메스로 가는 언덕길을 송아지를 떼놓고서도 뒤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
사무엘이 사사로 통치하다가 나이가 많아지자, 백성들의 요청대로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초대 왕으로 기름부었다.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는 오늘날 텔 엘-풀로 예루살렘 북쪽 4마일 지점이다. 그는 길갈에서 전쟁에 승리한 후 백성들에 의해 왕으로 옹립됨으로써 신정적 지도자의 특징을 구비했다. 사울은 요단 동편에 자리잡은 암몬, 모압과 전쟁하고, 서쪽 지중해안에 위치한 블레셋, 남쪽의 사막 유목민인 아말렉과 전쟁을 했다. 그러나 사울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 족속(출 17:8∼16)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아각 왕과 짐승들을 살려둠으로 헤렘법을 위반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됐다.
그후 등장한 다윗은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엘라 골짜기(삼상 17:1)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임으로 크게 백성들의 인기를 얻자 사울의 질투를 받고 쫓겨다니게 됐다. 왕위를 잃을까 불안해하던 사울은 마침내 블레셋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됐다.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보아산 아래 이스르엘 평지에, 블레셋은 아벡에서 올라와 수넴에 진을 쳤으나(삼상 28:4), 결국 사울은 세 아들과 함께 죽고 말았다.
반면에 양치기에 불과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됨으로써 존귀와 사랑과 왕권을 부여받는 축복을 얻게 됐다. 그는 사울이 죽은 후 헤브론에서 왕이 됐으나,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은 마하나임에서 남은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이스보셋이 죽은 후 다윗은 여부스족의 산성을 정복하고 그 이름을 예루살렘 또는 다윗성이라고 불렀다. 다윗은 서쪽으로 블레셋, 동쪽으로 모압과 암몬, 북쪽으로 소바와 다메섹, 남쪽으로 에돔 등을 정복해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한 언약을 성취했다(창 15:18).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다윗 언약이라고 불리는 약속을 주셨는데, 그 약속대로 왕이 된 솔로몬은 옛 지파동맹체들의 영역을 변경해 12행정 구역을 만들었다(왕상 4:7∼19). 그는 활발하게 주변 각국과 무역을 했으며, 다메섹에서 북동으로 140마일 떨어진 사막에 다드몰(로마시대의 팔미라)을 건축하여 상업기지로 만들었다. 그는 두로와 동맹을 맺어 항구를 사용했고, 에시온-게벨을 무역 항구도시로 개발해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와 무역했다. 욥바 항구를 통해 성전 건축용 목재를 수송했으며, 암몬과 모압, 다메섹, 에돔을 통과하는 대상무역로를 점거해 통행세를 징수하고 국제무역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국내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전략상 중요한 위치인 하솔과 므깃도, 악고, 악삽, 에글론, 길리기아, 게셀 등에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 등 활발한 건축사업을 했다.
(국제신학연구원장)
|
|
| |
|
|
|
|
| |
 |
| |
|
|
|